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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이 북받쳤던 날.

 

잊고 있다가 이 글을 읽으니까 그때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너무 서러웠는데, 그 서러움을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일년이 넘게 지났다.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됐고,

서로에게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는 기분이 꽤 좋다.

 

1.
몸이 아프지 않는 한 근래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어제 아침에는 마음에 내상을 입은 것 같다.

내상 입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표현이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를 표현할 방법이 그것뿐이다.

2.
내가 공부해서 알게된 경제 정보를 오빠에게 얘기하면 세세하게 물어본다.

그게 정확히 뭔지 그걸 왜 해야 하냐고 어떤 근거로 해야 하고 뭘 해야하는지

나는 그렇게 세세하게 지적하는게 좋았다. 내가 모르는 데도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들을 짚어볼 수 있었서 좋았다.

 

무조건적으로 내 의견에 끄덕여주기보다는 꼬치꼬치 캐물어주니까,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내가 정보를 건성으로 읽고 이해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주제든 대충 알고 지나가는 게 많았다는 걸 느끼고 나서는

오빠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허점을 지적하면 순간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그럼에도 그런 태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3.
하지만 나도 기분이 먼저 상할 때가 있다.

기분이 상할 때는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데
다른 사람들도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비슷하겠지?
나쁜 생각들이 머리 위로 뭉텅이로? 쏟아지듯 서럽기도 하고


4.

그건 그렇고, 오빠에게 부쩍 서운한 순간이 있었다.

오빠가 나한테 하는 지적이나 잔소리가

왜 다 오빠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편의에 맞춘 것들에 관한 조언 말고는

나에게 해주는 조언은 한정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구체적으로 내 발전이나 행복을 위한 지적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건 전적으로 내가 느끼는 입장이니
그 때 내 기분이 잠깐 상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낀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5.
그렇게 기분이 상하니까
되게 슬펐는데

나는 왜 타인이 아닌 날 위해
더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건 가정을 가진
엄마 또는 아빠들이
가져봤을 법한 생각같아서
그와중에 마음깊이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에
공감하고 감사했다.
나는 아직 아이도 갖지 않았고
책임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을.

회사다닐 때 쓰레기같은 몸 이끌고
휴일에 카페에서 밤새고
회사 나가기 전에 이직 준비하고 일대일강의도 들었다.

체력이 정말 약했고 심적으로 흔들림도 많아서

기대만큼 노력을 하지는 못 했지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연히 목표하던 것들은 언제나 끝 마무리가 아쉬웠고
항상 부족했다.

나는 내 노력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왜 더 독하게 하지 못할까 하면서도
남들에게 티내고 싶지는 않아.


하는 숱한 아쉬움과 갈등을 늘 안고 지냈는데
그 생각을 하면 괜히 속으로 심란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었잖아.

그렇지만 내가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때문에 오빠와 함께하는 시간에 소홀하지는 않겠다.
그 생각을 늘 갖고 있었고 속으로는 많이 갈등하고 애썼던 게 사실이다.


6.
그건 과거의 이야기이고 어제 오전에 결정적으로
답답함이 터졌던 이유가 있는데 오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자기전 공부해서 알게된 것들을 오빠에게
얼른 말해주고 싶어서 다 얘기를 했는데

오빠는 요즘 들어 자꾸 내가 뭘 하라고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오빠에게 하는 말들 중 도움이 안 되는 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나도 계속 돌이켜봤다. 그래서 더는 말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질문을받으니 또 어제 공부한 것을 마구 털어놨고
오빠는 질려한 것 같다.

7.
내가 배운 걸 오빠에게 얘기하면
뭘 하라는 시그널로 느끼고
오빠가 싫어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앞의 절차는 대신 끝냈으니까
오빠는 그냥 경험해보기만 해보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오빠의 답은 평소와 같이 이러했다.
그걸 왜 해야하는건데? 그게 뭔데? 그게 정확히 도움이 돼?

나는 몇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하다가
답답함에 울컥 터졌다.

오빠가 좀 알려주면 안돼?
그 이상은 오빠가 직접 알아봐야지
왜 나한테 A부터 Z까지 물어보는건가
100프로 확실할 수 있는 일이 어디있나 스스로 판단하고 더 알아보고 결정하라고

온갖 말이 터지기 전에 허탈함이 더 컸다.
오빠의 시간도 줄여줄 수 있다는 생각과 설레는 감정까지 더해
말을 꺼낸건데 진심으로 말을 더이상 꺼내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 두명에게
이런거 해보는게 어떠냐고 권했을때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왜 해야돼? 그게 뭐가 돼? 날 설득해봐 라고 말했다.

나는 그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는데
나도 공부하고 배우는 입장이고 알게된 것들에 대해 나누려고 한건데

그냥 가볍게 나온 말이겠지만 나를 설득하라는 그 말 자체에
할말을 잃었고 더이상 말하지 않는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얘기를 꺼냈는데 그게 도움이 확실히 되는지
나를 설득해보라고 얘기하면 누가 무슨 말을 더 해줄 수 있을까.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공부한 것들을
더 구체화해서 자기를 설득하는데 쓰라
자기에게 이득이 될 것 같은 일을 누가 대신 설득하지

오빠의 질문은 내가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정말 궁금한게 아니라

솔직히 귀찮으니까
하기 싫어서 그만 듣고 싶어서 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고

그 때 친구가 나에게 말했던
나를 설득해봐 라는 말과 같게 들렸다.

갑자기 황당하고
허탈한 화가 올라서 안할래
라고 말하게 됐다.

차라리 하기 싫다 라고 말한다면 내가 싫다는 사람 붙잡고
바보같이 계속 이렇게 해보는게 어떨까 권하지도 않을 건데
이런 걸 해야겠다 나에게 먼저 말했던 그 소리를 귀담아듣고

공부해서 떠들어댄 나를 탓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 노력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 하고 보상받지 못해서 화났던 걸지 모른다.

7.
그리고는 솔직히 슬픔이 밀려왔다.

오빠는 내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생각한 적 있을까.
나를 보면서 안쓰럽다 생각한 적이 없을까.

내가 하는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버릴 때
오빠는 쟤는 왜 저걸 하고 있을까. 뭘 원하는 걸까.
그런 것들을 궁금해할까. 아니면 그저 편하게 살려고
허상을 쫓는다 생각할까. 실제로 허상이라면 허상을 왜 쫓게된걸까.

나는 오빠가 이런 걸 하면 더 행복해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장기적으로 오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난 날들을 돌아봤을 때 이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라고 할만한 일들을 생각했고

내 부족함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잘 못해서 오빠가 힘들 수 있을텐데

내 이런 단점을 고치면

오빠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최소한 하루를 돌이켜봤을 때
오빠를 위해 쓰는 시간은 분명히 매일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어떤 사랑을 받고 있을까.


이 생각까지 이어지니까

나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건 결국 나밖에 없어?

라는 씁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씁쓸함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느낌 중 하나였다.

그런 걸 느끼는 순간 나는 가장 시시한 사람이된다.
여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오래 사랑하면 다 그런거지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사람들까지 깎아내리는 사람들.
가장 쉬운 사고방식을 선택하고는 남에게까지 부정적인 에너지와 사고방식을 전하는 사람들.

그래서 씁쓸함은 버리고 그 생각은 잘못됐다고 생각을 고치지만
내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지 못했던 것을 그리고 지금 보내는 매순간을 후회하고
또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은 너무 외롭고 슬펐다.


8.
어쨌든 이건 내가 기분이 상했을 때
밀려드는 생각들이니 중구난방인 면이있다.
다 풀고 괜찮아지려는 목적의 글이다.
다시 마음을 회복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하고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드니까.

다만 마음에 상처를 입은 건확실하니
풀어내야한다. 내상을 입고 그대로 놔두거나 참으면
슬픔은 짙어지고 과해지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마음에 짐이 된다.
덜어낼 수 없어서 다른 것들에 의존하게 된다.
의미도 재미도 없는 컨텐츠를 자꾸 소비한다거나
정크 푸드를 먹고 싶다거나
자꾸 산만하고 하나의 일에 집중을 못한다면
내가 덜어내지 못한 감정이 마음에 남아있다는 거다.


그럴 때는 슬픈 영상을 보고 차라리 우는게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계기에서든 심리적으로 약한 부분이나
아픔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같이 공감하고 나도 같이 슬프고
그냥 내 슬픔까지 다 비워내고 덜어낸다.


영화이건 현실이건
감정적인 나만큼이나 안쓰러운 마음은
세상 곳곳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블로그에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마음 안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의 에너지를
가장 빨리 털어낼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할 일이 쌓여있으니까 다시 정신차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