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컨디션이 좋지 않은 오빠는 일찍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나는 오빠의 핸드폰 사진 앨범을 보았다.
올 겨울에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연말이 되기 전부터 새해 초까지, 함께 갔던 곳, 함께 먹은 것들이 모두 찍혀 있었다. 선물을 받고 감동받은 일도 있었고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사진첩에는 즐거운 순간이 많이 담겨있었다.
갑자기 내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아주 사소한 일로 불안을 느꼈고, 더 나아가 나 자신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오빠에게 너무 미안했다. 오빠는 퇴근하자 마자 합성 어플로 내 사진을 합성하고는 껄걸 웃어댔다. 퇴근 후 내 웃긴 얼굴을 보면서 쉬는거였다. 그런데 나는 별 일도 아닌 걸로 상실감에 젖어, 오빠 사진을 보며 행복해하기는 커녕 우리랑 전혀 관련없는 유튜브 영상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건강하고 건전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오빠와 다르게,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 감사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 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못 하는 사람이다.
사진 앨범에는 좋은 기억이 많이도 담겨 있었고, 당장 어제만 해도 같이 웃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도 내가 수시로 불행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또 하루종일 나의 불안 증세에 좌절해서 집 정리를 안 했는데, 어제 오빠의 컨디션이 유난히 안 좋았던 이유에 이런 내 모습도 한 몫 거들었을 것 같다.
내가 정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13.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내 능력으로 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점때문에 내 능력이 부족해서, 내가 지금 벌어들이는 수익이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지금 무한정 받기만 하고 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하여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었고, 그게 살아가는 가장 큰 동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제 하루를 돌이켜보니 지행일치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에는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 진실한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나는 이러한 목적을 갖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이기적으로 내 충동적인 욕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려는 것들은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오빠를 포함한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살피지도 않으면서 내 능력에 대한 불만으로 가까운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다운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오빠에게 너무 미안했다.
불안 증세를 떠나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하루였다.
하루가 지난 오늘은, 내가 하려던 일을 접고 우리의 공간을 비우고 깨끗하게 하는데에만 집중했다. 정리를 좋아하는 오빠가 집에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행복감을 느끼는게 쾌적한 공간이니까. 평소였다면 게으르고 나태한 내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리하고, 내일 마저 해야지 멈췄을 일들을 그냥 오빠 퇴근할 때까지 계속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는 집에 들어올 때, 내가 갑자기 집 정리하는 척하면서 후다닥 움직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집의 대부분을 비우고 새로이 정리했다. 가족에게 이기적으로 구는 내 행동이 너무 싫었고 또 하나의 일을 끝내지 않고 질질 끄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정리를 계속 했다.
14.
오빠와 나는 결혼을 통해,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할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기분, 매일의 컨디션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시무룩해 하면 오빠 역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오빠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에너지를 주기 위해 나는 예전과 다르게 노력해야 한다. 과거와 다르게 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줄 알아야 하고, 체력을 길러야 하고, 목표를 정해야 하고, 보상을 떠올려야 하고, 계획을 재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계획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책임감있는 배우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